소쇄원도(1755년 제작)
소쇄원도는 16세기 초 조선조 문인 양산보가 조영한 별서정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판화로서, 우암 송시열(1607 -1689)이 그린 것을 1755년 다시
판각한 家板畵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송시열의 생존연대와 서로 어울리지 않아 아마 누군가 그린 그림이 통용되고 있었고 이를 나중에 판화로 제
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한다. 소쇄원도의 가치는 단순히 원림을 감상하거나 기록하기 위해 그려낸 實景畵라기 보다는 원림의 다양한 조원요소
하나하나에 문학적 상념을 부여하며 감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소쇄원의 풍광에 심취한 하서 김인후가 48영에 달하는 시로 엮어 내
었고 이를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아낸 것이다. 분명 여기에는 시를 읊는 모든 이의 문학적 감흥을 소쇄원도만 보아도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시각적
으로 유도하고 몰입케 하는 체험적 과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소쇄원의 조영적 우수성은 조영이후 소쇄원도가 제작되기 까지 200여 년간 수많은 문인들에 의해 자연주의 문학 속에서 칭송되어 왔으며, 판화를
통해 그 아름다움이 널리 공유되었고 역사적 실증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후손들에 의해 손질이 가해지긴 하였지만 4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원형
에 가까운 소쇄원의 모습이 남아 조선조 중기의 정원문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기록화의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소쇄원도가 그려진 판화의 구성을 보면 판화의 상부에 전체의 약 1/7을 할애하여 김인후의 48영시가 양각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소쇄원 전경이 판
각되어 있다. 또 외곽선 밖 좌변 한 줄에는 제작시기(崇禎紀元後三乙亥淸和下浣干....)를, 우변 한 줄은 중요 건축물과 제작자라고 추정되는 우암
송시열, 혹은 그가 제작자가 아니라면 그의 글씨가 소쇄원 안에 있음(.....有尤菴先生手筆)을 명기하고 있어 판화의 기념적 의미를 더해준다. 이러
한 시와 그림이 곁들여진 판화구성은 자연에 대한 예술적 감흥을 문학과 회화 속에서 누리고자 했던 당시 선비들의 멋을 느끼게 한다.
판각의 방법에서 볼 때 일부 담장의 돌과 곡천의 흐름을 음각으로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조원 형태는 양각으로 표현하고 있어 나열되는 구성물의 대
비 효과를 높이고 있다. 또 건물형태와 수목, 산형 등 대부분의 요소를 선묘법으로, 담벽은 점묘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단조로움을 줄이고 있다.
도화에 나타난 소쇄원은 담장을 경계로 원내 영역을 주범위로 나타내고 있으며 다양한 조원요소를 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원외 영역의 표현에 있어
서는 소쇄원의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배경으로서 산형과 촌락을 간략히 삽입하고 있다. 이는 조선조 지역도나 행사도 등의 기록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배치도화 기법과 유사한바 조원의 일곽을 설명하는 기록 중심적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소쇄원내에 묘사되고 있는 내용은 정사와 정자의 건물을 비롯하여 정자, 수목, 담장, 다리, 연못, 석물, 곡천, 물고기 등 구조물과 자연물들로서 그 형
태와 위치 크기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시제의 내용과 결부된 내용들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는 당시 18세기 조선조 회
화에서 특징 지워질 만큼 널리 즐겨 그려졌던 실경산수화풍과도 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표현기법 상 특징은 크게 보면 중앙 곡천인 계곡을 중심으로 상반부에는 내정과 후정, 계정 및 뒷산이 상방을 향해 묘사되어 있고, 계곡 하반부에는
진입부와 전정이 하방을 향해 묘사되고 있어 실제 경관을 보는 방향에 따라 전개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앙 계곡을 중심으
로 계곡 건너에 위치한 광풍각, 제월당, 부훤당, 고암정사 등의 내정과 후정 석가산, 꽃 계단과 담장 및 뒷산이 화면의 윗 방향으로 입면을 전개되어 있
다. 반면 계곡 하반부에는 애양단, 대붕대 등의 전정과 말을 타고 진입하거나 원내를 산보하는 인물 등 계곡진입부의 표현은 거꾸로 뒤집은 듯 화면의
아래 방향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곡문, 죽림재, 고암동, 황금정, 창암촌, 향음, 동백 등의 원정과 인근 마을의 묘사는 화면의 오른쪽 방향
으로 전개시키고 있어 전체적으로 四方向性을 띤 표현이 흥미롭다. 각 표현요소는 위치와 배경에 의해 장소 변화를 나타내는 여러 방향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전통회화에서 건물과 정원등의 입면이 한방향이 아닌 네 방향으로 전개된 표현은 주로 각종 지도나 인물표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궁궐도(17세기, 인평대군방전도)에서도 사용할 만큼 양식성을 가진 기법이다. 이러한 입면의 평면적 전개방식은 부감시를 원리로 全視的 시점을 둔
평행투시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인 조선중기까지 범용되던 묘사법이며 민간 풍속화에서는 조선조말까지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입면 전개기법이 소쇄원도에 적용되어야 했던 큰 이유는 바로 시점특성에 있다. 소쇄원 48영의 시를 한 수 한 수 읊을 때마다 옮겨지는 시상을
보다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시상에 따라 지상의 여러 장소를 옮겨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인 이동시점의 표현이 요구된다. 이 기법은 중첩원
근보다는 상하원근에 치중하여 고정시점이 아닌 지상에서 이동하면서 바라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건물이나 수목 등이 겹쳐
나타나는 부감법으로 한 방향에서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점보다는 지상에서 진입하면서 정원을 순환적으로 감상하며,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정
경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48영이 갖는 소주제의 개별적 시적 감흥을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상기의 입면 전개법에 따른 표현요소들의 방향이 판화의 四面과 수직 또는 수평으로 직각배치를 형성함으로써 정연하고 안정된 구도를 이루고 있다.
또 상하원근, 중첩원근을 중복시킴으로써 간접적인 부감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상의 소쇄원도는 소쇄원의 조영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또 조원주체인 양산보의 뜻을 기리기 위해 판화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보는데, 회화적
측면에서는 양식적 성격상 감상을 겸한 實景造園의 기록화로 분류될 수 있으며, 조영적 측면에서는 조원의 배치상태와 규모를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家圖인 셈이다.
소쇄원도
